약초 상식 하나
“100% 국산만으로 한약을 지어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환자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산 한약재만으로 처방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한약의 특성을 모르고 오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은 중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세계3대 전통 의학인 인도의 베다 의학,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의학과 1000년 이상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립되었습니다. 한약 처방을 구성하는 약재들은 일부 지방에서 나오는 것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아열대 지방에서 생산되는 약재들, 티베트 등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약재, 북쪽 툰드라 지대의 한대 지방에서 나오는 약재, 중국 서쪽 사막지대에서 나오는 약초 등 세계 다양한 기후와 풍토에서 자라는 천연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극동아시아 끝단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으로 재배 생산될 수 있는 한약재는 30여종 미만으로 매우 제한적이어서 처방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보다 국토가 크고 다양한 기후대를 포함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많은 한약재를 수입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약초 상식 둘
외국에서 인삼을 재배하고자 한 시도가 있었으나 크기만 무우만큼 커지면서 국내 인삼에 비해 약성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상품가치가 없어 실용화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약초는 여러 가지 등급이 있으며 원산지에서 재배된 것을 상품(上品)으로 칩니다. 녹용은 시베리아와 같이 추운 지방에서 자란 사슴의 뿔이 좋고 (국산 재배 녹용은 약성이 약해서 의약품이 아니라 식품용으로 허가 유통되니 국산이 하급입니다.) 심장병 치료제로 많이 쓰는 단향, 그리고 요즘 각광받는 강황은 인도산을 으뜸으로 꼽습니다. 약방의 감초라고 흔하게 쓰는 감초마저 한국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여 전량 100% 수입에 의존하는데 원산지인 몽고산이 특급입니다. 일부 한의원들이 국산 한약재만 사용한다느니 무리한 광고를 하는데 원산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상술입니다. (현명한 소비자들께서는 이러한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을 하는 한의원들을 윤리적인 이유에서 거를 것을 권장합니다. 이들은 거짓 상술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
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이 한약 자체에 대한 불신이 많이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높은 마진을 남기기 위해 값싼 저질 약재를 수입하는 몰지각한 약재 수입상의 문제와 의료용과 식품용 한약이 혼재되는 후진적인 유통의 문제로서 이 때문에 한약, 더 크게는 한의학 자체가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약재는 천연 자원으로서 산지의 조건과 생산과정의 다름으로 인해 많은 등급이 있는데 실제로 홍콩이나 호북성의 약재 집산지를 방문해보니 우선 그 규모에 놀랐고, 대단히 우수한 품질의 귀한 약재들을 볼 수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상품 약재들은 일반 시중으로 유통되지 않고 사회의 최고위층을 위해 소비되거나 선진국으로 수출됩니다. 일본에서도 내과 의료 보험 투약의 30%를 차지할 만큼 한약 처방이 많은데 일본으로 한국보다 양질의 한약재가 유통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씁쓸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도 많은 양의 한약재를 수입하는데 서방 선진국들의 수입상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우량 한약재를 요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영국의 모범적인 한약재 관리
저희 한의원의 한약재는 어디서 오는지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 하시고 어떤 분들은 제가 한국에서 한약재를 한 짐씩 가지고 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약재를 보따리상처럼 개인 수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환자분들께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함을 알려드립니다. 영국은 식품 및 농산물과 약품 규정이 매우 엄격한 국가로서 특히 한약재의 경우 국경에서부터 철저한 검역과 검사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국가적인 관리 감독 뿐만 아니라 영국 내의 대표적인 한약 관련 기구인 RCHM (Register of Chinese Herbal Medicine)에서는 정부의 Department of Health, Herbal Medicine Regulatory Working Group과 협조하여 랩에서 HPLC 검사 등을 동원해서 잔류 농약 성분 및 중금속 오염 등에 대한 품질 검사를 실시하며 원산지에서 유기농 수준으로 재배된 최상의 한약재만을 선별하여 ‘RCHM approved’ 마크를 부여합니다. 이렇게 선별된 약재는 잔류 농약 성분 및 중금속의 위험에서 자유로우며 약초 고유의 약리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영국으로 여러 한약 수입원들이 있지만 이렇게 RCHM 합격 인증 받은 곳은 손꼽을 정도이며 당연히 약재 가격은 비싸지기 마련입니다. 한번 인증되더라도 수시로 무작위 추출 검사가 실시되어 불합격 되면 인증이 취소되거나 심지어는 한약재 수입 면허 자체가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항시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RCHM에서는 멤버들이 만족스러운 품질의 약재를 공급받지 못하였을 경우 신고할 수 있도록 장려합니다.
한약의 역사가 동양에 비해 일천하나 약재의 품질을 유지하고자 이중 삼중으로 제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한국에서도 식약청 등에서 이를 본받아 실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런던에서 유일한 한국 한의사인 류 아네스 원장은 2001년부터 RCHM 멤버로서 생산에서부터 철저한 약제 관리를 거친 청정 약재만을 공급 받고 있으며 품질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유아들부터 노약자 모두 복용하는 우수한 한약의 조제에 긍지를 가집니다.
~류 아네스, 런던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