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2병, 미친 호르몬, 질풍 노도의 시기 등 사춘기를 지칭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골치 아픈 사춘기의 문제는 작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익스피어도 로미오와 당시 만 13세의 미성년자였던 줄리엣의 비극을 기술하였고, 고대 이집트 인들도 요즘 애들이 왜 이렇게 버릇이 없고 말썽이냐 한탄하는 문구를 남겨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 애가 왜 달라졌나
아이가 탄생 후 10여년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생존을 위해 순응하고 열심히 모방하는 두뇌를 가지고 살았다면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과정에서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펴고 날아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12살 부터는 아동기와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두뇌를 장착한 후 독립하여 장차 부모를 떠날 준비를 하는 과정입니다. 나의 호불호, 의지와는 상관없는 자연 법칙 전개의 무심함을 논한 노자가 생각납니다.
격동적인 호르몬 영향 만이 아니라 사춘기에 진입하면 두뇌 실질 자체에 심오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최근 실시간 두뇌의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자기 공명 영상fMRI 진단 덕분에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일보 후퇴 후 새로운 도약
인간을 이성적이고 사고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전두엽 부위에 사춘기 초입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신경의 가지치기(pruning)를 들 수가 있습니다. 아동기동안 만들어 놓은 전두엽 부위 신경계의 무려 50%가 솎아지는데 출생 직후에도 태아 시절 만들어진 신경계가 가지치기 된 후 유아기에 왕성하게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기의 주요 시점에서 기존의 신경계가 대폭 정리되고 새로운 도약이 일어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엄청난 가지치기 덕분에 13살, 14살 아이들은 덩치는 크더라도 9살, 10살 먹은 어린이들보다 판단력과 공감력이 떨어지고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 경향이 있게 되며 계획을 세운다거나 충동 조절하는 능력, 결과를 예측하면서 적절한 행동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전두엽 고유 기능은 떨어지고 반면 감정을 주관하는 하위 뇌 부위가 활성화 되어 별 것 아닌 것에 벌컥하고 변덕스러워지고 반항하고 말썽을 피우는 등 양육자들이 애를 먹게 되는데 두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를 이해하면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신경 수초의 형성
이렇게 신경계가 정리된 후에는 아동기의 유약한 신경계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신경계의 형성이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사춘기를 틴에이져 시기로 보았지만 현재는 25세 까지 두뇌와 신경 발달이 지속된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25세까지 얼마나 두뇌와 신경을 개발시켜 놓느냐, 얼마나 골격을 발달시켜놓는가의 문제는 앞으로 평생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장차 어떻게 중년과 긴 노년을 보낼 지 결정합니다.
상처 받기 쉬운 뇌
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만큼 상처받기도 쉬운데 사춘기는 인생에서 가장 혈기 왕성한 나이이지만 다치거나 병 나거나 사망하기 쉬운 시절로서 상해나 사망률이 다른 연령군에 비해 300% 나 되며 신경 가지치기와 수초 형성 과정의 발란스가 맞지 않아 정신 분열증, 자살 충동, 불안 우울, 두통, 뇌파 이상, 섭식 장애 등의 여러 가지 신경 정신 질환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춘기의 처방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하면 필자는 <수면-영양-운동> 이 세가지를 반복해서 되뇌이게 하는데 갓난 아이가 잠을 많이 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사춘기 학생들도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신경계가 제대로 발달할 수 있습니다. 운동이 굉장히 중요한데 신경계의 기능이 우리 몸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움직임이라면, 내부로 나타나는 것은 사고력입니다. 성장기의 영양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키나 덩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두뇌와 신경계의 발달이 급선무로서 신경계 구성 재료인 필수 지방산의 풍부한 섭취가 필요합니다.
뇌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UCLA 대학의Daniel Siegel교수는 두뇌 발달과 양육에 관한 전문가로서 사춘기에 나타나는 여러 골치 아픈 성향들을 매우 따뜻한 시각으로 건설적인 관점에서 해석합니다. 그는 문명을 형성하는 힘 자체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역설하는데 인간 진화의 역사를 보더라도 수렵과 채집의 주역들, 미지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주역들은 늙수구리한 영감님들이 아니라 겁 없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이었다고 하며 이들에게서 무리에서의 소외는 곧 죽음으로서 항상 뭉쳐 다닌 기억이 인간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대표적인 사춘기의 정서적 특성을 영문 첫자를 따서 ESSENCE라고 명명하였는데 감정과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 있고 (Emotional Spark), 적극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며(Social Engagement),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Novelty), 창의력을 발휘 (Creative Exploration)하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 사춘기의 ESSENCE는 기력과 뇌력이 떨어지며 시들어가는 중장년 층에게 뇌는 바로 이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며 놀랍게도 요즘 치매 예방 가이드라인과 상통합니다.
~류 아네스, 런던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