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42명이 숨지며 9·11 테러와 같은 수준의 사망자 수가 3주 마다 미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이게 왠 전시 상황인가 싶은데 미국은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문제로 실제로 재난, 내전 못지 않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월 초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국가 위기 상황을 선포하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 10명 중 적어도 7명이 의사 처방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많은 퍼센티지가 여러 약물을 섞어서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의료 행위로 인해 발생한 질병을 의원성 질환 (iatrogenesis)이라고 하는데 처방 오류를 포함하지 않은, 적합하게 처방된 제약의 사용이 미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 순위을 차지하고 있어 FDA 에서 허가받은 제약 제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피해자들은 물론 식자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개인 의원에서든, 병원급에서든 가장 흔하게 처방되는 약물은 단연 진통제이며 그 뒤를 항우울제 등이 잇고 있습니다. 2000년 초반에 비해 단 10여년만에 미국과 영국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 빈도가 무려 3-4배 늘었는데 미국의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지켜보며 영국도 미국의 전철을 밟으려나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로운 나라의 이면에 몸과 마음이 극도로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WAR ON DRUGS
미국이 약물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원래는 마약과의 전쟁으로 시작하여 헤로인, 코카인, 마리화나 등의 약물 유통과 오남용 문제를 척결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좀비 같은 마약 중독자의 삶,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마약상들, 정의로운 경찰들이 소탕 작전을 벌이는 모습은 헐리우드의 단골 소재이기도 합니다. 약물과의 전쟁은 더 이상 마약과의 전쟁이 아니라 ‘마약성 진통제와의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이미 영국에서도 헤로인, 코카인, 뒷골목의 불법 마약 다 합한 것보다 진통제가 훨씬 많은 사람들을 중독과 사망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틴에이져들과 4-50대 중년의 때아닌 조기 사망에 크게 일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진통제가 증폭시키는 문제점
시중에서 처방전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파라세타몰(타이레놀), 이부프로펜 등의 진통해열제도 알고보면 간 손상, 위장벽 손상, 신장, 심장 손상 등의 부작용이 많은데 일반인들이 별 의심없이 사탕 먹듯 복용하는 현세태가 우려스럽습니다. 통증의 원인을 해소하지 않고 계속 진통제로 인체의 경고 신호를 끄는 접근도 문제로서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학계에서 만성 통증에 대한 더욱 전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환자 분들은 진통제가 통증을 잡고(?) 몸을 낫게 하는 약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체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약으로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은 더욱 증폭된 통증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진통제는 통증을 못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뇌에서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감정의 부재(apathy)를 겪는 사람은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끼기 힘들며 우울 불안에 취약하여 우울증 약물이나 항불안증 약물을 같이 복용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 뿐 아니라 정신도 병드니 자신의 내면과의 대면을 피하고 알코올 중독을 비롯한 각종 중독에도 취약해집니다.
진통제 (Opioids) 중독인가, 헤로인 중독인가
<Heroin>
마약성 진통제는 말초에 작용하는 일반 진통제가 듣지 않을 때 사용하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강력한 진통제로서 원래 암환자의 통증이나 극한의 통증으로 일반 생활이 불가한 사람에게 사용이 허가된 것입니다. 우리 환자분들도 일반 해열진통제로 버티다가 계속 통증이 없어지지 않으니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원래 아편에서 기원하였는데 현재는 식물에서 추출하지 않고 합성 알칼로이드 성분의 코데인, 모르핀, 헤로인, 옥시코돈, 데메롤, 트라마돌, 메타돈 등의 약물들이 이에 해당하며 특히 작년 가수 프린스의 사망을 야기한 펜타닐이 유명합니다. 이들은 헤로인을 제약의 형태로 FDA 에서 허가 내어준 것으로 옥시코돈이나 메타돈 중독은 곧 헤로인 중독입니다. 헤로인 대체물로 길거리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펜타닐이 대량 암거래되고 있습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 제약회사는 더욱 강력한 진통제 출시 요구에 편승하여 닥터들이 옥시코돈 같은 합성 헤로인을 진통제로 처방하도록 로비하고 공격적으로 마케팅하여 작금의 사태가 발생하게된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마약 중독자가 되길 선택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번 진통제 국가 위기 성명을 내면서 약물 중독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하는데 그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약물 중독자로 살길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는 의료 전달 체계 상의 ‘희생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수백만명의 대규모 중독을 초래한 마약 공급 거래상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더 이상 옥시코돈 반복 처방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처방 제제를 살 돈이 없어지면 어둠의 경로에서 헤로인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이 만성 통증을 앓던 일반 소시민이 마약 중독자로 나락에 빠지게 되는 과정입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실체가 마약이기에 강력한 의존성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며 마약성 진통제와 마약 중독, 이를 공급하는 암시장의 존재는 손에 손을 잡고 함께 합니다.
참고:
Short Answers to Hard Questions About the Opioid Crisis
Don’t blame addicts for America’s opioid crisis. Here are the real culprits
~류 아네스, 런던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