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발표된 올해의 생리의학 분야의 노벨상은 천연물에서 기원한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과 아버멕틴(avermectin)의 발견에 대한 공로로 중국의 투유유 여사, 아일랜드의 윌리암 캠벨 그리고 일본의 사토시 오무라 교수가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수상 내용에 굉장히 반가우면서 감회가 밀려왔는데 의학 분야에서 전세계의 쟁쟁한 최첨단 연구 분야, 예를 들면 분자 유전학 등에 비하면 오래되고 다소 아날로그적인 분야인 천연물 연구 (natural products research) 분야에 이번 수상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으며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혜안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천연물 연구 분야는 의학분야, 제약 분야의 태동이 되는 오래된 분야로서 지난 수 세기 동안 발달해 왔지만 현재에는 그 위상이 다소 쪼그라져 있는 분야입니다.
역사적으로 천연물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많은 의약품들이 천연물에서 기원하였는데 예를 들면 digitalis, taxol, vincristine등의 약물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은 제약 회사의 덩치가 커지게 되고 의료에 대한 입김이 이제는 너무나 세어져서 이들이 독점 생산하는 각종 제약 제제로 이제 현대 의학의 의료 행위가 결정되기에 이르렀고 모든 질환이 제약에 의해 철저히 관리되는 시스템(disease management system)으로 변모하게 되었으며 의사도 환자도 이를 당연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반면 한약재와 같이 자연에서 나는 천연물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특허권의 취득이나 독점 생산, 시장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업적 관심과 투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천연 약재나 자연 의학은 오래된 전통과 효과, 인체에 대한 입증된 친화력에 불구하고 의학의 중심에서 밀려나 의사들은 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게 되었으며 대체 의학, 보완 의학의 변방으로 밀려난 신세입니다.
천연물 과학 연구소의 기억
필자는 90년대 중반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지만 안락한 임상 한의사 생활을 보류하고 서울대학교 천연물 과학 연구소 (http://www.snunapri.ac.kr)에서 연구 조교로서 근무하면서, 동료들의 말을 빌자면, 수년간 ‘사서’ 고생하였습니다.
이곳은 일제 시대 우리 나라에 세워진 최초의 연구소로서 역사가 깊고, 세계보건기구 WHO 전통의학협력연구센터 그리고 유네스코(Unesco)협력 센터로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의 유명 연구 기관들과 천연물 분야에 관한 공동 연구가 활발한 곳으로 이 분야에 관한 한 독보적으로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한약의 성분과 기전에 대한 기존의 한의계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전세계의 리서치가 쌓여 있으며, 세계적으로 활발한 인적 교류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한의학에 대해 일본 중국 뿐만 아니라 미대륙과 유럽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련 자료들을 끊임없이 읽고 수집 정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현재도 학문적으로 끊임없이 자양받고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치열한 시간을 보낸 연구소를 떠난지 어언 이제 15년이 되었지만 당시 한약재를 비롯한 다양한 천연 자원에서 성분 분리하고 화학구조를 구명, 생리 활성을 탐색하고 신약 개발에 이르기까지 약학자, 생화학자, 유기합성화학자들과 동거동락하고 전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들을 소화하여 실험을 통해 결과를 내기까지 고생했던 기억들이 생생한데 당시 연구소에서는 고대 경전의 해석에서부터 분자 구조물을 아우르는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의 축적, 무려 8000여 종의 화합물에 대한 광범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그 중 일부 화합물은 베스트 셀러 제약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목격 하였습니다.
이번 노벨상 수상 결과를 보니 개똥쑥에서 중국의 투유유가 발견한 성분에도 우리 연구소가 굉장히 근접 접근 하였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투유유 여사
박사 학위라든지 유학 경험 등 이른바 ‘스펙’도 없으면서 중국 전통 의학 연구원의 교수인 투유유 (85세)의 드라마 같은 인생에 굉장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올곧 40년간 한 분야의 길을 걸은 그녀의 집념 어린 연구 생애와 중국 정부의 장기간의 지원이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녀가 발견한 아르테미시닌은 한약재 청호(靑蒿) 즉 개똥쑥(Artemisia annua Linné )에서 저온 추출하여 얻은 물질입니다. 청호는 1600년전에 발간된 중국 의학 의서에 발열 질환, 특히 말라리아 질환에 특효가 있는 약재로 기입되어 있는데 투유유는 이에 영감을 받아 남편이 문화대혁명에 숙청되고 아이가 탁아소에 보내지는 와중 모택통이 지시한 ‘작전명 523’ 말라리아 퇴치 비밀 프로젝트에 말 그대로 몸바쳐 헌신하였습니다.
영국의 Telegraph지는 노벨 의학상 속보를 전하면서 ‘중국 의학에 수여하는 첫번째 노벨상’이라고 하였으며 투유유 자신은 노벨상 위원회에 보낸 수상소감에서 “아르테미시닌은 중의학이 세계의 인민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의계에 대한 회한
천연물 과학 연구소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지금도 가장 고맙고 보람을 느끼는 것으로 전세계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드넓은 세계에 눈을 뜨게 된 점과 특히 자매 결연 연구소였던 일본의 도호쿠대학교 약학 대학 병태생리학 교실의 카즈오 오우치 교수님과 평생 사제의 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노벨 의학상 수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호기심에 오무라 교수님과 친분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사토시 오무라 교수는 기타사토 연구소에서 천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해내는 괴력의 소유자로서 같은 분야가 아님에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분이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소탈한 인품을 가진 분이라는 점을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교수님께 전해 들었는데 여러 가지로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타사토 연구소는 한의학 관련으로도 대단히 우수하고 왕성한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천연물 과학 연구소와 많은 인적 교류가 있었던 곳이며 필자가 동경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세계는 한의학이 가진 자원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고 세련되며 다제적(interdisciplinary) 접근이 이루어 있는 와중 고국의 한의계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투자와 자양을 받지 못하고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에 의해 경제적인 갈등 구조, 소위 밥그릇 싸움으로 조롱과 오해의 대상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류 아네스, 런던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