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국 겨울은 특히나 길고 예년보다 추운 것 같습니다. 한의원은 일년 중 가장 많은 한약 처방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기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약이라고 하면 뭔가 두리뭉실한 느낌인데 아카데믹 저널이나 논문 등에서는 보약을 칭하여 Adaptogen 이라고 합니다. 이는 스트레스에 대처해서 신체의 적응력을 키우는 활성이 있는 약을 의미하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구체적이고 적절한 현대적인 표현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심각하게 피곤함을 느끼며 기진맥진 상태로 의원을 방문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잠이 많이 오고 많이 자는데도 피곤이 풀리지 않아서 무슨 병이 있는 것 아닌가 검사를 해봐도 정상인데 체력이 회복이 안된다고 호소하는 경우입니다. 지난 몇 달간 감기와 독감에 수차례 걸렸던 분들도 감기나 독감 증상 자체는 나았으나 그 후 계속되는 만성 피로감, 우울감, 전신의 나른함과 무력감, 계속되는 몸살, 순환 장애 상태는 실제 많은 사람들이 겪는 증상으로 Postviral Fatigue syndrome, 바이러스 감염 후 만성피로 증후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살펴보면 전신의 광범위한 단백질 소모 상태가 발견되고 밧데리가 방전된 것 마냥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저하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회복되려면 소화가 용이하면서 밀도 높은 영양소의 공급과 휴식과 충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난 해 9월, 10월부터 인체를 공격하는 수많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감염들에 대항해 싸워 왔고 추위라는 큰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해 항온을 유지하느라 움직이지 않아도 많은 체력의 소모가 있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엄동설한의 한 겨울보다 이렇게 어느덧 입춘과 우수가 지난 2월 말 정도가 되면 혈액 검사 상 대부분의 사람들의 면역 세포들이 일년 중 최저 바닥 상태를 찍는다고 합니다.
겨울을 지나며 신체에 가해진 여러 가지 스트레스 요소들 몇 가지를 보면서 어떻게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생제 사용
아이들이나 어른들 이미 몇 코스의 항생제를 사용하셨다는 분들이 많은데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항생제를 한번 사용하면 다시 정상 장내 균총으로 회복되기까지 적어도 3개월에서 심지어 2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산균을 섭취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섬유소, 필수 지방산, 비타민 등 영양가 좋은 음식물의 섭취에 신경을 써야 성공적으로 장내 장착될 수 있습니다. 불량 식품의 섭취는 불량 미생물의 번성을 조장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세요. 인간 게놈 프로젝트 당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 유전자가 고작 3만여개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아서 갸우뚱했었는데 알고 보니 컴퓨터가 자신의 하드디스크는 가볍게 유지하면서 대용량 클라우드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처럼 인체도 필수적인 기능은 자신의 시스템에 직접 구축하고 있으나 상시 다변하는 생체 요구는 장내 균총에 위탁해서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나오는 리서치는 새로운 차원에서 항생제 사용에 신중을 요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은 인간 세포가 가진 유전자보다 100배 이상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인간의 몸과 함께 진화해왔습니다. 인체의 기능은 특히 소화나 면역 기능 뿐만 아니라 심지어 두뇌 기능까지 장내 미생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광 부족, 비타민D부족
비타민 D 연구를 하면서 런던이 무려 북위 51도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랐는데 이는 신의주, 삿뽀로, 울란바토르보다 훨씬 높고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던 캘거리보다도 살짝 높으니 얼마나 높은 위도에 살고 있는 것인지 실감하였습니다. 이는 비타민 D 보충 면에서 매우 암울한 소식인데 일년에 6개월 이상 피부로 비타민 D를 합성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겨울에는 거의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는데다가 간혹 낮게 뜨는, 긴 그림자를 비추는 겨울 햇볕은 비타민 D를 합성하지 못합니다. 햇볕을 받는가, 비타민 D를 합성하느냐의 문제는 응달에서 자란 식물과 햇볕을 충분히 받고 자란 식물에서 보이는 차이만큼 인체에서도 생체 기능 촉진 면에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부활절 이후가 되어야 비로소 영국에서도 비타민 D를 만들 수 일광량이 됩니다.
실내 공기 오염
겨울에는 대기 오염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가정 내 공기 오염이 건강 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충분히 환기시키지 않고 바람이 들어올세라 보온과 난방으로 무장하다 보면 각종 유해물질의 농도가 순식간에 높아지게 됩니다. 먼지나 진드기, 곰팡이 등의 유기물 뿐만 아니라 청소나 세척 시의 화학 물질, 취사 시 나오는 불완전 연소물, 집안 내장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각종 화합물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염은 기관지나 폐 기능만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혈액으로 확산되어 중독 상태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류 아네스, 런던 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