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꼭두 새벽부터 M25를 운전하여 볼보 챔피언쉽이 열리는 켄트의 런던골프클럽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일주일간의 접전 끝에 일요일이 결승전이었는데 얼마전 라이더 컵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줬던 스웨덴의 헨릭 스텐슨 선수가 올라왔길래 부랴 부랴 표를 구입해서 출동하였습니다.
승부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바로 코 앞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의 체형이나 동작을 분석하고 감상하는 것은 일상의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어서 평소 럭비나 조정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경기를 자주 관람하는 편입니다. 음악 홀에서 연주를 들을 때에도 살짝 뒷편에 앉아서 눈을 감고 음미하라고 음악을 전공한 친구가 조언해주었으나 저로서는 음악 자체도 중요하지만 수십년에 걸쳐 최적화된 루틴과 그 사람 고유의 생체 역학이 궁금해서 맨 앞자리, 연주자의 허벅지 앞에 앉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번 결승전 경기도 30대 스칸디나비아 출신 두 남성 골퍼들의 파워, 스트렝스, 스피드, 발란스, 협응력, 유연성에 멘탈까지 불꽃 튀는 향연이었습니다. 우아하고 진중한 플레이를 펼치는 스텐슨 선수를 따라 다니며 응원하였으나 왠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면서17홀에서 우승컵과 60만 유로의 상금이 핀란드의 미코 선수에게 돌아갔습니다. 매치 플레이 형식으로 오전, 오후에 걸쳐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를 쫓아 다니며 선수들의 신묘한 기량에 감탄하고 열심히 박수 친 하루였습니다.
프로 VS 아마추어
요즘 미디어의 발달로 이런 세계적인 선수들을 가깝게 접하고 분석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어느 종목이든지 간에 세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릴 때 운이 좋게도 궁합이 맞는 종목을 선택하였고 환경 조건이 맞아 떨어졌으며 무엇보다 특수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0.001% 안에 드는 이 사람들은 통계적으로는 오차 범위 내에 속하는 자들이며 이들을 계산에 포함했다가는 인구 평균 수치를 왜곡할 수도 있는 위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정기적으로 한의원을 찾아오는 영국 국대 하키 선수 등을 비롯해 프로 선수들을 진료실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데 평생 단련된 신체(갑빠)와 구리색 피부에서 뿜어 나오는 건장함에 압도되며 갑자기 진료실이 좁아지는 느낌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들의 위용에 비해 속을 들여다 보면 사정이 좀 다른데 악기라든지 스포츠며 재미는 아마추어일 때나 쏠쏠하지 싶습니다. 프로가 되면 차원이 달라져서 인체에 가하는 스트레스가 극한에 이르게 됩니다. 부상에 시달리더라도 대부분 마음 놓고 충분한 치료와 재활을 하지 못한 채 경기에 출전하기 급급하여 보기에 딱한 심정입니다. 신체에는 크고 작은 각종 부상과 그 땜방의 흔적들이 훈장처럼 자리잡고 있으며 강건해 보이는 근육에도 오랜 동안 고된 노동에 시달린 것과 유사한 피로와 긴장, 상흔의 축적이 관찰됩니다. 교감 신경 극대화로 출전 당시에는 몸이 찢어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경기 후에는 대부분 앓아 눕고 시즌이 끝날 즈음이면 재활 치료 대상이 됩니다. 매일 신체에 가하는 혹독한 반복 자극은 누적되어 일반인들 보다 훨씬 심각한 소모 상태 (wear and tear)에 시달리며 특히 관절의 마모 현상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세포 수준에서도 문제인데 매일 장시간의 트레이닝으로 숨을 헐떡이는 과다 호흡 상태와 심박출의 부담으로 엄청난 양의 활성 산소(free radical)가 유리되고 신체의 전 조직이 산화 스트레스(oxidative stress)와 염증 상태에 시달려 오히려 일반인보다 빠른 노화 현상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생체 역학과 무브먼트, 과학적 트레이닝과 운동 선수들의 특수한 영양 요구를 맞추기 위한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나오고 좋은 서적들도 많이 출간되었는데 아직 현장에서는 도입되지 않고 있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은퇴를 하고서도 이들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데 척추에 각인된 젊은 날의 부상을 극복해야 하며 엔진이 좀 노후하였더라도 원래 6기통이라면 여전히 많은 연료의 공급이 필요한 것처럼 특수한 대사 요구 (metabolic need)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워낙 치열한 스포츠 계에서 무수한 경쟁을 거쳐 세계 랭킹에까지 오른 자들은 위에서 거론한 듯 선천적인 요소와 후천적 환경 요소가 맞아 떨어진 천운을 가진 사람들로서 일반인들과는 신체 조건이 태생부터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거의 돌연변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포츠 영웅들이 미디어에 나와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그들 자신이 일반인과 얼마나 다른지 체감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는 마치 수능 전국 수석이 8시간씩 푹 자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성공담이라든지 백상어가 멸치들에게 너희들도 이것을 먹고 연습을 하면 자신과 같은 백상어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을 불어 넣는 것처럼 공허합니다.
심각한 몸치라든지 운동 선수를 제외한 정규 분포 곡선의 80% 에 해당하는 일반인들은 아마추어로서 스포츠를 즐기고 신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수준의 운동을 하면 되는데 반가운 소식은 예전처럼 허구헌날 트레드밀에서 한시간씩 뛸 필요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제 짧은 시간의 고강도 운동 High intensity interval training이 대세입니다. 이에 관해 다음주를 기약하겠습니다.
~류 아네스, 런던 한의원~